주민탐방 / 농부 구자준

 

 

진강산과 대모산 사이에 위치한 길상면 길직리 일대는 야트막한 산등성이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양지바르고 땅이 기름져서 밭농사 짓기에 적합하다. 필자는 바람이 심하게 불던 봄날에 길직리를 찾아 갔다.
“요즘 한창 바쁜 철이 되놔서…….”
구자준(63세) 씨는 혼자서 인삼밭의 햇빛 가리개를 철사로 묶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면서 이완돼 있던 것을 다시 고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성실함을 말해 주듯 인삼밭 주변은 깨끗했고, 햇빛 가리개는 바람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양도면에서 태어난 구 씨는 27세에 이순자(60세) 씨와 결혼하고 나서 길직리 349번지로 이사를 왔다. 가정을 꾸린 후 농사를 지으면서 이웃 동네 사람들이 인삼 재배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논을 빌려 소작하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나아질 수 없었다. 그는 인삼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시루에다 흙을 깔고 구해 온 씨를 뿌렸다. 이듬해 봄에 150평 남짓 되는 텃밭에다 인삼 모를 옮겨 심고 자식 키우듯이 돌봤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6년 뒤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본 이후 지금까지 35년간 삼을 심어 왔다.
인삼이 한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중국 양나라의 도홍경(456년~536년)이 쓴 ‘명의별록(名醫別錄)’에는 백제가 513년, 고구려가 435년에 산삼을 보냈고, 당나라에 조공을 바친 것을 기록한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신라가 627년에 산삼을 보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정조실록’에는 송도(개성)에서 박유철(朴有哲)을 비롯해서 많은 농부가 일복(日覆 - 해가림)하여 삼을 재배했다고 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인 1200년대 이전부터 인삼이 재배되어 왔고 한반도에서 생산된 삼을 고려인삼으로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 농부들이 삼을 심은 이유는 수익성이 높아서이기도 했지만 조공으로 바칠 산삼이 고갈되어 더 이상 산에서 삼을 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화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천삼(1등급), 지삼(2등급) 비율이 높다. 증기로 쪄서 말린 홍삼은 6년근의 천삼으로 만든다. 6년이 되어야 인삼의 효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인삼에는 사포닌이 많아서 항암, 면역강화, 강장작용, 순환기능 효과와 혈압 조정, 항 스트레스, 당뇨병 개선, 노화 방지, 해독작용 등 많은 기능이 있다. 사포닌은 희랍어로 사포나(sapona), 즉 비누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인데 사포닌이 혈관을 비롯해서 각 기관을 비누로 씻어 주는 듯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포닌 종류가 미국삼에 14종, 중국삼에 13종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 홍삼에는 37종이 들어 있다. 효능이 입증된 홍삼은 홍콩 도매시장에서 미국삼에 5배, 중국삼에 8배의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

“어린애덜 모냥 손이 많이 가.”
구 씨는 무엇을 물어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쉴새없이 손을 놀려 일을 했다. 인삼은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 작물과 달리 인삼은 재배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인삼은 두릅나무과의 다년초로써 음지 식물이어서 삼밭에다 반드시 햇빛 가리개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자본과 인력이 필요하다. 햇빛 가리개 아랫부분은 자외선 투사량이 적고 습도가 높다. 따라서 세균이 자라기에 알맞기 때문에 많은 병이 발생한다. 특히 근부병(根腐病)이 생겨 인삼 뿌리가 썩거나 녹아 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삼은 최소 4년에서 6년까지 키워야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인삼 재배의 어려움 중 하나는 생육기간이 길어서 자본 회전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6년간 고생하면 한꺼번에 목돈을 쥘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소작농인 구 씨가 3남1녀를 낳아 남부끄럽지 않게 교육시키고 출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인삼 덕택이었다.
구 씨가 처음부터 인삼을 잘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삼이 환경 변화에 민감한 식물이어서 한 번 잘 키웠다고 해서 다음에도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인삼을 심기 위해서는 먼저 삼밭 예정지를 잘 정해야 한다. 예정지는 북향이나 동북향의 경사가 적은 곳이 좋다. 북쪽에 장애물이 없이 넓게 트이고, 여름에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해야 된다. 또한 아침에는 햇살을 받아도 좋지만 저녁에는 해가 들지 않아야 한다. 밭의 겉은 모래참흙, 속은 질참흙이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배수가 잘 되면서 뿌리가 꼿꼿하게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삼 재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예정지 관리이다. 구 씨는 삼밭이 정해지면 밑거름을 하기 위해 10a(300평)당 1800kg의 볏짚을 밭에다 덮고 외쟁기로 갈아엎었다. 옛날에는 떡갈나무 잔가지를 꺾어다가 잘게 썰어서 밭에다 뿌렸다. 그의 경험으로 보면 떡갈나무만큼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것이 없었다. 그 외에도 각종 활엽수 생잎이나 산야초를 밑거름으로 썼다. 청초(각종 풀)가 썩는 것을 돕고 청초만으로는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깻묵, 쌀겨, 누에똥, 골분(骨粉) 등을 뿌린다. 그런 다음 1, 2년에 걸쳐 쟁기로 15번 이상 깊게 갈아엎는다. 5 ~ 10월 중에 밭을 가는 것이 좋은데 7 ~ 8월 햇볕이 뜨거운 한낮에 자주 갈아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일광 소독을 통해 병충해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다른 작물을 재배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힘들고 어렵다.

농가에 희망을 주는 인삼

강화도에서는 언제부터 인삼이 재배되었을까.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이후 삼을 심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920년대에 개성산업조합이 재배 면적 확보를 위해 강화도를 최적지로 선정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강화에서 인삼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6.25 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내려 온 사람들에 의해서다.  
최근에 강화에서 인삼이 재배되고 있는 면적은 30만 평이다. 1975년도에 250만 평이 재배 된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면적이다. 그 이유는 연작을 할 수 없다는 점도 있지만 자본 부족과 인력 감소에 원인이 많다. 가격 대비도 많이 떨어졌다. 인삼 한 차(750g)에 쌀 한 가마 값과 맘먹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그러나 쌀을 비롯해서 농산물의 수입 자유화에 따른 농촌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인삼은 강화의 특작물로 장려되는 품목이다. 강화인삼조합에서는 강화군청과 함께 협력하여 2009년까지 100만 평의 경작지를 목표로 삼고 농민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힘닿는 데까정 일해야지. 놀면 뭐허나.”
현재 600평의 밭에다 인삼을 재배하고 있는 구 씨는 다른 사람과 공동 투자를 해서 2500평을 늘려 갈 예정이다. 예전에도 동업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실패를 봤다. 5년 되던 해의 발육상태가 아주 좋아서 캐자고 했지만 동업자가 1년간 더 키워서 한몫 잡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근부병이 들어 완전히 망하고 만 것이다. 2500평을 경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간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즈음 구 씨가 경운기에다 장비를 챙겼다. 그는 요즘 아내가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걱정이 많다. 그런 중에도 장남이 집 근처에서 목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경운기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구 씨 뒷모습이 노을만큼 아름답다.

글˙사진 / 유영갑

 

 

사진설명

▲ 인삼밭에서 작업 중인 구자준 씨

 

▲ 정리가 잘 된 구자준 씨의 인삼밭

▲ 갓 캐어 낸 6년근 인삼